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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2 22:53

여름 감기가 이렇게 독할 줄은 몰랐다. 지난 일요일부터 꼬박 오늘까지 열심히 앓아주었다. 토요일엔 감기가 오려는 징조였는지 목이 따끔따금했다. 이미 해놓은 약속을 취소할 수는 없었고 나갔다 돌아오니 식은땀이 줄줄. 일요일에는 종일 침대를 친구 삼아 지냈다. 이제야 생각이 트이고 숨이 고르게 쉬어진다.

가만히 누워있으니 지난 며칠 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이 떠올랐고, 내가 궁금해 하는 사람도 떠올랐다. 둘이 동시에 떠오르며 비교되는 일은 자연스러웠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이 지금 무엇을 읽고 있나를 살피는 버릇이 있다. 내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은 '카네기의 스피치 & 커뮤니케이션'을 읽고 있었고, 내가 궁금해 하는 사람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을 읽고 있었다. 스피치 & 커뮤니케이션을 읽는 사람은 달변가가 되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는 걸까. 조금 어눌한 목소리를 가진 그와 대화하면서 문득 이이는 달변가를 꿈꾸는 사람일지 모른다고 생각해보았다.
궁금해 하는 사람은 '최후의 유혹'을 '그리스인 조르바'와 같은 속도감을 기대하며 책을 읽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와 달리 더디게 진행된다고 했다. 같은 작가가 썼다고 비슷한 전개는 아닐테니. 그냥 그 책에 맞는 속도로 읽으면 좋을 텐데... 철학, 인생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그럼 나 좀 상담을 해주련, 생각해보았다.  

호감을 보이는 사람에게 문자가 왔다.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다가, 나는 목이 따끔따끔, 감기가 걸리려나보다 하고 이야기했더니 문자 끝에 '감기는 견디셔요' 라는 답이 왔다. 솔직히 위안을 조금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열이 오르기 시작할 때였으니. 그러나 먼저 피식 나오는 웃음. 당신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다듬어지려면 멀고도 멀었군요. 라고 답해주고 싶은 것을 꾸욱 참았다. 궁금해 하는 사람에게 작업물이 잘 나왔노라고 감사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렇군요. 저도 보고싶군요' 라는 답장이 왔다. 몸이 아파 무척 힘들었는데 이쁜 답장 하나에 미소가 지어졌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을 만날 때, 어떤 사람을 만나야 현명한 것인지 알려주는 바이블이 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가진 장점들을 한꺼번에 늘어놓고 너에겐 이런 사람이 좋지 않겠니 하는 것들. 말도 안 되는 나쁜 생각인 것을 안다. 감기가 떨어져야 이런 생각 따윌 안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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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9 02:52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정을 담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따뜻한 말을 건네며 먼저 손 내밀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오전 회사에서 머리를 푹 숙이고 원고를 보는데 문자가 왔다.

회사?? 요즘 많이 덥지? 네 미니홈피 음악 '여름날'이 좋아. 내 벨소리~

같은 동아리를 했던 대학 선배의 연락. 느릿하고 졸린 듯한 목소리가 문자에 그대로 배어있다. 다시 수능 공부를 해서 교대에 입학해 지금은 방학 중인데 회사원보다 더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북유럽으로 여행도 다녀오고, 간디학교에 자원봉사활동도 가고... 여전히 느릿하고 조용조용하지만 20대 초반의 대학생과 생활하더니 조금씩 변하는 모습이 보인다. 물론 좋은 면이 늘어나는 것.
아무런 스케줄이 없는 이틀의 여유가 주어졌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시간이 되면 회사 근처로 와주면 좋겠다고 전하니, 그럼 근처에서 영화 한 편을 보며 기다리겠노라고 문자를 보낸다. 기다려주겠다는 말이 고맙고 마음을 설레게 해서 퇴근 시간이 기다려졌다.

청계천을 걸으며 최근의 관심사, 요즘에 했던 일들을 나누었다. 선배의 수줍은 두 볼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눈에는 곧 장난이 묻어나올 듯한 웃음이 엿보였다. 그렇게 영향을 미친 사람이 누굴까 궁금해 물어보니 다름아닌 주변에 포진한 어린 대학생 동생들. 20대 초반의 청춘이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 부럽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나도 밝은 어린 친구들과 함께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내 생활을 말하는데, 솔직히 좀 지치기도 한다고 했다. 지금도 20대이긴 하지만 푸릇한 20대가 지나감에 대한 아쉬움이 마음 한 구석에 있다고 했고, 일을 하면서 생기는 고민거리도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생겨나는 싫은 사람 이야기, 주변에서 도와주는 좋은 사람들 이야기 등...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선배가 말했다. 그래도 네가 참 부럽다고. 그리고 네가 있어서 참 마음이 좋다고.  

무슨 말일까 싶었다. 이런 대답을 바라고 한 이야기는 아닌데... 느릿한 선배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자기에게 기꺼이 풀어내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학교의 어린 동생들과의 대화가 가끔은 어긋날 때도 있는데, 내가 하는 이야기는 겪어보진 않았어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내가 부린 투정아닌 투정이 빛을 발한 순간이라고 할까.

선배가 빈말을 한 건 아닌 것 같다. 흐르는 청계천을 한 번 보고, 내 눈도 한 번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말이 전달되는 동안, 내 마음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그냥 내 이야기를 투덜투덜 풀어낸 것도 그 누구에게는 기쁨이 되기도 하고 역으로 내게도 기쁨이 되고. 이렇게 좋은 경우가 또 있을까.

멀리 가야하는 탓에 헤어짐이 아쉬움에도 10시 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이좋게 전철을 나눠타고 집에 오는 길. 먼저 내린 내게 문자가 왔다.

너가 가니까.. 집에 가는 길이 더 길다.. 오늘 참~ 고마워~ 조심해서 가고~ 또 봐~^-^

지친 하루의 끝에 기분 좋은 만남을 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람. 먼저 손 내밀며 달래주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느낀다. 더불어 나도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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